여행/Seattle and Vancouver

여행전야 기우

cubefilm 2010. 9. 8. 09:53
  정신없는 사이에 학기가 끝나고 반 친구들 몇명이 으쌰으쌰해서 시애틀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. 나에게 지금은 더 이상 시애틀이 별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, 한 때는 미국여행의 대명사이기도 했다. 출장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갔다오기 전까지... 유치한 발상이지만 전적으로 영화"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(Sleepless in Seattle)"때문이다.

 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기보다는 시애틀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. 뭔가 침울한 날씨, 도톰한 니트를 입어야하고, 밝은 잿빛과 조금 색이 바랜 자주가 어울릴 것 같은 풍경.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어느새 하늘에서 눈이라도 송글송글 내릴 것 같은, 어둑어둑한 하지만 설래는 그런 곳이리라 상상했고 오랫동안 믿어버렸다. 그리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과 함께...

  하지만, 샌프란시스코 출장 이후로 미국여행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-물론 샌프란시스코가 아름다웠지만 상상과는 달랐기에- 시애틀에 대한 환상은 점점 망각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.


  누구나 여행이라면 탁 떠오르는 말이 "아는만큼 보인다"일 것이다. 그만큼 여행에는 목적이 있어야하고 그만큼 준비도 많이해야 한다. 막상 발닿는대로 간다거나 바람부는대로 간다는 건 적어도 내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. 즉흥적인 여행대로 그 매력은 대단하지만 그렇더라도 기본 큰 뼈대는 가져가야 한다. 적어도 볼거리, 관심거리, 먹을거리를 알아가면 일정은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알차게 만들 수 있다. 하지만, 그것조차 준비하지 않으면-딸랑 여행책자 하나에 의존한다면- 패키지여행사에 맡겨버리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.

 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자료를 준비하다보면 여행의 설레임보다 여행이 힘들어까하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. 혼자가는 여행은 그래도 상관없다. 모두 내 선택이니까. 하지만 여럿이 가는 여행은 사람마다 원하는 여행스타일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여행이 정말로 힘들어진다. 감정을 조율하는데에 술값이 더 든 적도 있다. 그렇게라도 풀리면 다행이다.

  이번 여행( 9/8 - 9/14 )을 준비하면서 요 며칠 그런 불안한 감이 스믈스믈 들었다. 어짜피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한 것이니, 후회하지 않는 여행이 되도록 해야한다. 의견이 다르면 일부구간 따로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. 색깔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. 서로 부담주지 않는 방법이다. 그렇게 다니다가 만나면 오히려 더 반갑기도 하다. 과연 불안한 느낌이 기우이길 간절히 바란다.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.